2008년 9월 28일 일요일

구약의 예수님

-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 (창 40:1)
술맡은 관원장은 오직 포도나무만 바라본다. 그 나무의 싹과 꽃과 열매와 그리고 그 즙을 바친다. 물론 그 포도나무는 예수님이요 그 즙은 흘리신 피를 나타낸다. 예수님의 피로만이 사람이 구원됨을 보여준다.
반면에 떡굽는 관원장은 흰 떡 세 광주리 (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) 외에 "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식물"이 있다. 그 자는 자기의 죄 때문에 달린다.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식물은 무엇일까? 바로는 누구를 의미하는 것인가?


- 왜 놋뱀인가?
하나님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많은 능력을 보여주시며 출애굽 시키신다. 이것은 마귀(공중권세 잡은 자)가 다스리는 세상에서 그 욕심을 따라살지 않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살아가는 삶의 시작을 의미한다. 이것은 우리의 노력이 아닌 홍해바다를 가르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통해 성취되는 것이다. 믿는다는 것 자체가 사실 기적이 아닌가?
이후 출애굽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상을 다시 그리워한다. 놀랍게도 ... 그리고 부추, 파, 마늘과도 같은 식물을 그리워한다. 또 하나님이 주신 것, 만나나 메추라기 반석의 생수들을 불평한다. 이 때 불뱀을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은 괴로움을 당하게 된다.
그런데 왜 하나님은 뱀을 놋으로 만들어 매달라고 했을까? 이것은 쳐다보기만 하면 구원받는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인데 마음에 걸리는 것은 왜 거룩한 모습이 아닌 사람을 괴롭히는 뱀의 모양으로 만들어 달으라는 것인가?
나무에 달린자 마다 저주아래 있는자(신 21:23)라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은 분명 맞는데 왜 뱀의 모양인가?
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
(로마서 8:3-4)
할렐루야 ... 그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기꺼이 오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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